‘정시충’의 변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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숙반 13번 천예원
이곳에 오기 전 나의 별명은 ‘정시충’이었다. 항상 애매한 위치에 있었고 애매한 성적에 애매한 미래밖에 없었다. ‘이대로는 안 되겠다’ 싶어서 기숙학원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찾아낸 곳이 여기 진덕여자기숙학원인데 남들은 몰라도 난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.
사실 김해에서 다섯 시간을 달려 광명에 도착했을 때는 조금 후회하긴 했다. 너무나도 낯설었고 고향을 떠나 한 달 동안 낯선 곳에서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내 두발을 묶었고 어깨를 짓눌렀다. 한참 망설이다가 독서실에 들어왔을 땐 더욱 심란했다. 많은 아이들이 꽤 일찍 와 있었는데 하나같이 책을 펼치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에 충격을 좀 먹었던 것 같다.
울며 겨자먹기로 앉아 눈에 들어오지도 않은 단어장을 보며 빨리 시간이 가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. 하지만 그런 말이 있다. 처음이 힘들지 고비를 넘기면 괜찮아진다고, 정말 내게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. 늘 늦게 자고 학교에 가서 하루 종일 잠만 자던 내가 11시40분쯤에 잠들어 6시 20분에 일어나 규칙적인 생활을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. 개운하게 일어나 씻고 집밥처럼 푸근하고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독서실에 들어오니 모든 게 잘 될 것만 같았다.
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지도 않았다. 처음 며칠은 자리에 앉아 다른 친구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공부라고 제대로 해 본 적도 없는 입만 정시 파이터인 ‘정시충’이 뭘 알았겠는가. 매 시간이 따분해 책만 뒤적거렸었다. 그러다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문득 그 속담이 떠올랐다. ‘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.’ 정말 신세계였다. 김해에서 다니던 학원과는 정말 달라도 너무 달랐다. 과장 하나 안보태고 귀에 쏙쏙 들어오다 못해 콱콱 박히는 것 같았다.
그렇게 아는 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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